넷플릭스 흑백요리사 미슐랭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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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비영어권 콘텐츠 순위에서 한국 콘텐츠가 1위와 톱텐 안에 드는 것은 이제 놀라울 일이 아닌데, <흑백 요리사>는 또 다른 티핑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수치를 보면, 지난 9월 마지막주 시청수가 490만 뷰로 비영어 TV 콘테츠 1위를 기록했고, 영어 콘텐츠까지 합치면 TV 콘텐츠 중 4위를 기록했다. 사실 요리 경연대회는 한물 간 아이템이기도 하다. <아이언셰프>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요리 콘텐츠가 쏟아졌던 미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넷플릭스는 오히려 데이비드 장과 같은 셀럽 셰프를 내세운 라이브 쿠킹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실험을 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근데 <흑백 요리사>가 그럼에도 잘 되는 이유는 일단 K푸드의 위세가 아주아주 크다는 이유가 있다. 직간접적으로 K푸드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얼마나 큰 인기를 얻고 있는지를 자주 이야기 해왔고, 얼마 전에는 친구분의 포스팅에서도 다음 K푸드는 순대국이라는 말씀에 곱창/막창 BBQ가 되지 않을까 농담 섞어 이야기해왔는데,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한국 음식의 무한 진화를 보고 있으면 이게 농담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큰 인기를 얻는 흐름은 이미 늦어도 재작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23년에 특히 더욱 커졌고. 제작기획팀과 넷플릭스의 콘텐츠 기획자들은 이 흐름을 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새롭지 않을 포맷을 있는 대로 스케일을 키우면서 화제성을 갖추게 만들었다.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와 백종원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한국 (음식)의 대표적인 셰프들, 그리고 무려 아이언셰프에서 우승한 에드워드 리와 같은 요소까지 깨알처럼 챙겼다. 자, 보면 소셜미디어에서 온갖 이야기가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 콘텐츠를 좋아하는 비영어권 국가들 그리고 심지어 미국 시장에 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사실 넷플릭스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가성비 콘텐츠'...

알로에의 효능 한국의 알로에 화장품

 

'김정문 알로에'金正文회장


3천억원 시장에 이르는 건강식품 알로에를 이 땅에 처음 보급한 사람.

그 자신 30여년 간 온갖 병에 시달리다 알로에를 만나 극적으로 생을 되찾았다는 사람. 알로에의 보급과 과학화에 여생을 바치기로 한 사람.

알로에라는 한 식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김회장은 명실상부한 '건강의 전도사'이다. 자신이 체득한 '알로에의 진리'를 전파하겠다는 신념으로 건강강연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 '알로에 건강강연 1천회'라는 기록을 돌파했다. 9475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 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그의 1천회강연에는 장마철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처럼 많 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는 이 사람들에게 '건강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정체절명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건강은 이제 생활 필수품 !!!


"과거에는 돈과 재물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척도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건강입니다. 부모의 사 랑도 자신의 건강을 지켜주지는 못합니다. 자기 대신 아파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 도 없습니다. 건강은 이제 '생활 필수품'입니다. 그리고 건강정보의 과잉시대에 올바른 건강정보 하나가 생애를 바꿉니다. "

이어 그는 알로에라는 식물의 효능을 얘기하며, 알로에로 치료될 수 있는 병명을 나열하기 시 작했다. 변비 위염 위궤양 피부병. . .

거의 1백여 가지에 이르는 병명이 그의 입에서 하나씩 흘러나왔다. 청중들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 지는 순간이었다.

김회장에게 이날 강연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79()'한국 알로에의 집'을 설립하면 서 시작한 '건강강연'1천회 째를 기록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으로서는 옛 일이 주마등 처럼 스쳐가면서 감개무량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사람을 모으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알로에의 효능을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았지요. 기 껏 20-30명을 모아놓고 강연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특히 84년 부도 후 재기해서 첫 강연을 할 때는 단 한 사람의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한 일도 있었습니다. "

하지만 김회장은 "그 때나 지금이나 온갖 병고를 겪다 마지막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의 청중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자신을 찾는 환자들에게 복음처럼 전해주는 알로에. 과연 그가 신봉하는 알로에의 효력은 얼마나 과학적인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인간이 알로에를 약으로 사용한 것은 무려 1만년 이전으 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35백년 전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인류 최고의 의학문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 처음 약재로 등장합니다. 이후 알로에는 서양에서 지사제 등 약재로 널리 쓰였습니다. 동양에서도 중국 宋代'개보상정본초'라는 의서에 등장하고 우리 나라의 동의보감 에도 나오는 등 널리 쓰였습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와 화학약품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알 로에는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

김회장의 알로에에 대한 지식은 대단하다. 알로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나오는 알 로에 관련 논문을 섭렵하여 나름대로 공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도 국내에서 발간되는 모 든 과학잡지를 구독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52년 미국 비키니섬에서 실시된 수소폭탄 실험이 알로에의 놀라운 효능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것. 당시 비키니섬 부근을 항해하다 방사 선으로 심한 화상을 입은 일본 어부들이 알로에 베라를 피부에 붙인 후 상처가 깨끗이 아무는 기 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후 각국에서 알로에의 효능에 대한 실험이 다각적으로 진행됐고 그 신비함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알로에 원산지인 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섬에 있는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연구결과 등 을 인용해 가며 알로에의 효능을 계속 역설했다. 이에 따르면 알로에는 인체 면역기능강화 효과 가 있다는 것이다. "체액은 본래 산도 7. 4pH 의 약 알칼리성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산성으로 바뀌 면 저항력이 약해져 병에 쉽게 걸리는 것입니다. 알로에를 복용하면 바로 이러한 체액의 알칼리 성을 유지해 줍니다. 또한 혈액순환을 촉진함으로써 60조에 이르는 세포 곳곳에 피를 원활히 공 급해 줍니다. 다시 말해 병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 능력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알 로에의 유효성분은 모두 80여 가지에 이르는데,'알로에 울신'이라는 물질은 각종 소화기 계통의 궤양자리에 새로운 세포를 나게 하고, '알로에틴'이라는 물질은 진균,포도상 구균의 독소를 중화하 여 균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유명한 세균학자이자 알로에 연구가인 소에다 박 사가 원심분리기로 알로에의 성분을 분류한 결과를 보면,'알로미친'이라는 물질은 항암작용을 하 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




그는 "여러 가지 알로에 중 알로에 아보레 센스는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알로에 베라는 소염작 용 및 내병력,즉 자연 치유력을 도와주기 때문에 백혈구의 식균 작용을 강화시킨다"고 강조했다. 김회장이 알로에의 효능에 대해 이렇듯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이론적인 박식함 때 문만이 아니다. 자신의 몸을 도구로 삼아 알로에의 효능을 '임상실험'해 본 경험이 없었다면 이같 은 자신감을 피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그의 병력 과 젊은 날의 좌절 등을 되짚어봐야 한다.

그는 1927년 경남 통영읍(현 충무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흑백 무성영화나 신파극 선 전을 하는 극장의 나발쟁이였고, 어머니는 교회의 전도사였다. 31남 중 막내로 부모와 누나들의 끔찍한 사랑 속에서 성장한 그가 처음 병마와 맞닥뜨린 것은 경성사범학교 1학년 때. 경상도 시 골학교에서 10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로 유학 온 그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는 엄청난 좌절 로 다가왔다. 학교에서 실시한 정기검진에서 드러난 병은 폐침윤. 폐결핵 1기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국비생으로 월25원을 받던 그에게 "고향에 내려가 병을 고치고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지만 그는 점점 더 병마의 늪에 빠져들어 갔다. 폐결핵만이 아 니라 위확장,위궤양,만성중증변비,류머티스 등 온갖 다른 병들도 찾아든 것이다. 당시 그가 걸린 병은 모두 11가지. 나중에 알고 보니 피가 점차 산성화하는 '산혈증(酸血症)'이라는 증상이 면역기 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었다. 폐병이 점차 악화되자 그는 고령읍에 나가 매일 20cc들이 칼슘 주 사를 혈관에 맞는 칼슘요법을 실시했다. 페니실린이 없던 당시로서는 그것이 폐병을 고치는 주요 한 요법이었다고 한다. 45년 해방될 무렵,그의 팔뚝에 더 이상 주사바늘을 꽂을 자리가 없게 되자 폐병은 그의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다른 병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였다.

52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온다. 그리고 부산 피난시절 사귄 기독학생 친 구들과 함께 '기독교 사상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든다. 기독교적 이상사회를 만들겠다는 당돌한 젊 은이들이 모인 이 단체에서 그는 회장직을 맡았다. 그리고는 동지들의 꿈을 실현시킬 '자금'을 마 련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20대에 겁없이 시작한 사업은 모두 실패로 끝나 버렸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잘못된 투자로 밑천을 까먹는 등 악연과 악운이 겹쳐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나이 30. 이번에는 병이 아닌 쓰라린 실패를 안고 그는 두 번째로 낙향을 했다.

하지만 그는 고향에서 재기한다. 원예업은 시작해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한겨울에 국화를 피게 하는 억제재배에 성공하고, 파인애플과 바나나 재배에도 성공했다.

이 무렵 그에게는 인생을 뒤흔들 가혹한 시련이 닥쳐오고 있었다. 어렸을 때 걸린 고질병들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악화된 것이다. 특히 위장병과 류머티스가 살인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당시 노루모산 등 제산제를 거의 밥과 같은 양으로 먹었습니다. 그 때 먹었던 온갖 약들을 합하 면 아마 트럭 2,3대 분은 될 겁니다. 또 류머티스 때문에 농장의 인부들이 하루에 몇 차례씩 다리 를 밟지 않으면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육체가 만신창이가 되다보니 신경질환까지 생겨 불면증,대 인공포증에도 시달렸지요. 이 때문에 5년 간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


드디어 75년 평소 가깝게 지내던 張基呂박사가 "세상을 뜰 때가 됐으니 마음 준비를 하라"며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사업은 망하기 일보직전이었고 부인이 그를 버리고 집을 나가는 등 가정도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다. 그는 결국 끔찍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두 번이나 자살을 감 행한다. 한 번은 자신의 방에서, 또 한 번은 부산의 바닷가에서였다. 하지만 모두 미수로 끝났다. 수면제를 잔뜩 먹었으나 약에 대한 내성이 강해져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알로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마지막 자살을 시도한 후 한 달 쯤 되던 때였다. "국민학교 동창생이'알로에 건강법'이라는 일본 책자를 우연히 소개해줬습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꽃집을 뒤져 알로에를 구해다 먹었지요. 그런데 신통하게도 그 지겨웠던 만성변비가 없 어지고 류머티스증상도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그 때처럼 절실히 느낀 적도 없 었습니다. 이후 그는 모든 일을 전폐하고 전국을 유랑하며 알로에를 구해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 서 한편으로는 부평에 있는 친구농장을 빌려 알로에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9'한국알로 에의 집'이란 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달려든 알로에 사업은 몇 년 못 가 망해버린다. 역설적이게도 알로에의 효 능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면서 알로에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이 원인이었다. 알로에 업자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 서로 덤핑경쟁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자금력이 튼튼치 못했던 그는 빚 을 지면서 어렵게 회사를 지키려 했으나 831월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다. 부도금액은 15천 만 원. 당시 저질 알로에를 팔던 알로에업자 8명이 구속되는 등 국내 알로에 시장을 그가 망하면 서 함께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그는 8310월 청계천 7가의 골방을 빌려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야말로 '목숨을 건' 알로에 강연에 나선다. "당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업에 재 기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알로에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나한테 돈을 빌려주었던 사람들이 나를 믿고 옆에서 지켜본 것이 큰 도움이 됐습 니다. "

결국 그는 재기에 성공한다. ()김정문알로에는 85년 이래 매년 1-2% 급성장을 거듭해 1993년의 경우 28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현재 그는 ()김정문알로에 외에 ()푸른화장품 과 ()건도라는 자회사도 거느리고 있고, 모두 3백 명이 넘는 직원을 책임지고 있는 자리에 올랐 다. 능력을 우선시하는 인사원칙 때문에 그의 회사에는 중졸 출신 이사도 있다.

그의 집무실에는 알로에 베라,사포나리아,아보레센스 등 약재로 쓰이는 대표적인 알로에 세 종 이 화분에 담겨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알로에를 지켜보며 그는 또 다른 사업구상을 한다. 알 로에의 특수물질을 유전공학적으로 배양해 신 물질을 만드는 것. 그가 '알로에 기술연구소'를 설 립해 이미 착수한 )김정문알로에 외에 ()푸른화장품 과 ()건도라는 자회사도 거느리고 있고, 모두 3백 명이 넘는 직원을 책임지고 있는 자리에 올랐 다. 능력을 우선시하는 인사원칙 때문에 그의 회사에는 중졸 출신 이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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