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플러 죽이기(The Columnist, 2019) 리뷰

영화 악플러 죽이기(The Columnist, 2019)

인터넷이 우리 일상에 필수품이 된 건 언제였을까? 또 주머니 속의 핸드폰으로 언제든지 인터넷을 사용해 불특정 다수와 소통할 수 있게 된 게 언제였을까?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인터넷이 필수품이 된 건 적어도 2000년대 이후였으며, 스마트폰이 보급된 건 2000년대 후반(한국은 2010년대)이다. <악플러 죽이기>는 인터넷이 일상이 된 현재 사회를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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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여러 미디어를 활용해 남들 앞에 자신을 드러낼 수단이 넘치는 시대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지, 타인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에 대해 아직 서툰 편이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용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터넷은 인류 역사에 등장한지 얼마 안 된 기술이니까. 지금은 사회 인식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과도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술을 만들었지만, 어떤 기술은 인간을 오히려 구속하고 지배한다.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는 자체 생명력을 가진 이런 기술을 ‘자율적 기술’이라고 칭했다. 인터넷을 만든 건 인간이지만, 시간이 흘러 인터넷이 문화의 일부가 되면, 인터넷은 거꾸로 자신을 만든 인간의 행동을 구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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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화 주인공 펨케(카챠 헤르베스 역)는 칼럼니스트다. 일반인에게 얼굴과 정보가 알려져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일반 대중에게 SNS에서 매일같이 악플을 받는다. 그녀는 자신에게 악플을 쓰는 악플러에 대해 모르지만 악플러는 그녀를 안다.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상황이다. 나는 유명인은 아니지만, 2019년 2월 15일 가평군 노조게시판에 어떤 글을 올렸다가 100개가 넘는 리플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때 상대방은 나를 알지만 나는 상대방은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인 "정보 비대칭"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내 경우는 영화 주인공 상황과 좀 다르다. 영화 주인공은 상대방을 전혀 몰랐지만 나는 익명 상대방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을 활용해 다양한 상황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전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영화 장면을 살펴보자. 주인공 펨케는 불안할 때 안절부절못하며 '손가락'을 자주 떤다(본 영화에서는 악플을 작성하는 손가락을 상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입술을 물어 뜯는 초조한 주인공 얼굴이 보인다. 감독은 안절부절못하는 주인공 표정을 클로즈업해 보여준 후 나중에 이유를 제시한다. 카메라가 그녀에게서 조금씩 물러나며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대중 토크쇼에 나가 악플에 대한 표현의 자유에 대해 논하는 중이다. 이는 관객이 먼저 궁금하게 만든 다음 조금씩 정보를 알려줘 궁금증을 해소하는 카메라 움직임이다.

감독은 웹(web)사이트를 거미줄(web)로 비유해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주인공은 자기 앞에 있는 거미줄로 걸어가더니 갑자기 손으로 거미줄을 치워버린다. 앞으로 웹(web) 상에 있는 악플러들을 거미줄(web)처럼 눈 앞에서 치워버릴 거라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다.

감독은 주인공이 사는 마을에 실제로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과 (마을 풍경을 그대로 모방한) 미니어처를 번갈아 보여준다. 그러다 갑자기 주인공이 등장하더니 (마을 풍경을 그대로 모방한) 미니어처를 뒤엎어 버린다. 나중에 마을을 뒤집어놓을 정도로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주인공을 암시하는 장면이다(이 장면은 영화 후반에 주인공이 출판사 편집자의 남편을 죽이러 갈 때 다시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살인을 비디오 게임이나 디즈니랜드 등 가상현실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모형 기차도 디즈니 랜드나 비디오 게임같은 가상 현실(VR)이라고 할 수도 있다. 주인공은 애인에게 비디오 게임 총싸움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글 속에 "암스테르담이 디즈니랜드로 바뀌었다"란 문장을 삽입하기도 한다(이 영화는 네덜란드 영화다). 모형 기차는 디즈니랜드 같은 상상 속 현실을 상징한다. 마을 풍경 미니어처가 뒤집어진 후 영화 원제 "THE COLUMNIST"가 등장한다(한국어 제목 자체가 영화 내용 스포일러인 경우다).

 

주인공은 (대중 앞에 나서 책을 홍보하라는) 출판사 편집장과 의견 충돌이 잦다. 출판사에 방문한 주인공의 답답한 심경을 대변하는 장면이 바로 등장한다. 악플에 민감한 주인공은 토크쇼 등에 출연해 대중에게 자신의 의견을 노출하기 싫어하지만 출판사 편집장은 반대로 생각한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책 홍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감옥 창살같은 사무실 칸막이가 주인공을 가로막는다.

집에 도착한 주인공은 층간소음을 내는 이웃 주민을 내려다 본다. 주인공은 나중에 이웃 주민이 공교롭게도 악플러라는 걸 알게 된 후 이 남자를 지붕에서 밀어뜨려 죽인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미장센으로 (예상되는) 불길한 미래를 암시했다.

주인공은 (얼마 전에 걸어가 거미줄web을 치웠던 곳에서) 옆에 있는 문에서 갑자기 나오는 악플러와 마주친다. 주인공은 결국 이 악플러를 살해한다. 거미줄(web)을 치운 곳과 웹(web)에 악플을 다는 이웃을 마주친 곳이 동일하다. 주인공의 선택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마트에서 쇼핑하는 중에도 스마트폰을 보며 악플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주인공은 악플러의 얼굴을 살펴 본다. 놀랍게도 (층간소음으로 주인공을 괴롭히던) 이웃이 악플러였다. 주인공을 충격을 받아 소스병을 떨어뜨린다. 빨간색은 피를 상징하고, 병이 땅에 떨어져 깨지는 것은 악플러가 아래로 떨어져 죽게 될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주인공은 다음 신에서 악플러를 지붕에서 떨어뜨려 죽인다.

주인공은 거미줄을 치우듯 이웃집 악플러 울타리를 부순다. (바로 앞 장면에서 거미줄을 보여준 후 울타리를 부수는 주인공 모습을 병치해) 울타리를 부수는 행위가 거미줄을 치우는 행위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웃 악플러가 부서진 울타리 가운데 있다. 전경에 있는 깨진 울타리 뒤에 악플러가 서 있다(중경). 깨진 울타리는 악플러를 상징한다. 이 악플러는 조금 후에 주인공에 의해 죽게 된다.

주인공은 지붕 위에 있던 이웃집 악플러를 아래로 떨어뜨려 죽인 후 삽을 가져와 악플러의 손가락마저 잘라버린다. 부서진 울타리 옆에 악플러가 쓰러져 있다. 부서진 울타리는 거미줄web과 웹web 상의 악플을 동시에 은유한다. 주인공이 이후 악플러의 손가락을 계속 수집한다. 손가락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스마트폰이나 키보드를 사용해 악플을 작성하는 '매개체'가 손가락이다.

주인공은 딸이 만든 포스터를 함께 바라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딸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학생이다. 어떤 표현이라도 용납되어야 한다는 딸과, 어떤 악플도 용서할 수 없는 엄마가 대립된다.

주인공은 한 악플러 집에 침입해 악플러를 감전시켜 죽이고 집 안에 있는 거미를 본다.

이제 주인공은 악플러를 계속해 죽이기 시작한다. 악플러를 죽일 때마다 손가락을 수집했다. (악플러에 대한 연쇄살인 장면 중간에) 연인, 친구와 함께 보내는 가족적인 분위기의 장면을 교차 편집해 대조적인 분위기를 강조했다. 영화 대부(Godfather) 등에서 이런 분위기의 연출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 안에는 두 모습이 공존한다. 가정에서의 따뜻한 엄마, 비정한 살인자, 둘 모두 동일한 주인공의 모습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집에 돌아온 어느날, 현관문 창에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애인 얼굴이 현관문에 나타난다.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에 애인의 얼굴이 겹친 것을 보고 놀란다. 천연덕스러운 살인 장면 중간에 공포 영화적 요소를 첨가했다.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중에도 자신에게 달린 악플만 신경 쓰고 있다. 가운데 있는 주인공 모습이 스마트폰 화면 때문에 연출상 조명을 받은 듯 하다.

급기야 주인공은 이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보지 않고도 상상만으로 악플을 떠올리는 상황이 되었다. 피해의식이 망상으로 발전했다.

주인공은 이제 출판사 편집자의 남편을 죽이러 간다. 놀랍게도, 출판사 편집자의 남편도 악플러다. 여기서 영화 초반에 등장한 장면이 다시 등장한다. 기차 모형은 출판사 편집장의 집에 있는 미니어처였다. 주인공이 저지르는 이 살인 장면은 주인공 딸이 표현의 자유 관련 연설을 하는 모습과 교차편집 된다.

딸의 연설 장면과 동시에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교차편집으로 등장한다. 딸은 어머니가 평소에 주장한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연설하는 중이다. 딸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연설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바로 지금 악플러를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중이다. 딸이 "여러분,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라는 대사로 연설을 마무리 할 때 주인공은 방아쇠를 당겨 악플러를 살해한다. 총소리와 박수 소리가 어지럽게 섞여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감독은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를 때 전혀 반대되는 분위기의 배경음악을 삽입해(대위법) 묘한 느낌을 준다. 참고로 영화 마지막 장면, 출간 기념회에 초대 받은 주인공도 "인생을 위하여!"라는 대사로 영화를 마무리 한다(출간 기념회에 초대받은 독자들은 그녀의 복장을 행위예술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이 대사와 함께 박수 소리가 들리며 영화가 끝난다.

 

주인공이 저지르는 마지막 살인 신(scene)이다. 순백의 옷과 총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신에서 주인공은 악플러와 악플러의 아버지, 게다가 애인까지 살해한다. 피해자 등 뒤에 보이는 갱스터 영화 '스카페이스(Scarface)' 포스터와 피해자가 입은 티셔츠에 새겨진 'FORTNIGHT' 글귀가 인상적이다. FORTNIGHT는 총싸움 게임이다. 심각한 분위기와 총싸움 게임을 동시에 병치하는 감독. 주인공이 악플러에게 하는 이 말은 주인공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주인공은 마지막 살인을 저지른 후 자신의 출간 기념회에 도착한다. 하얀 옷과 깔끔한 분위기가 붉은 피와 대조된다. 주인공을 둘러싼 카메라는 총을 상징한다. 주인공이 저지른 마지막 살인(애인) 장면에서도 총소리와 딸이 사진 찍는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딸이 사용하는 카메라는 주인공이 선물한 것이다). 참고로 'shot'에는 '총소리'란 뜻도 있지만 '촬영'이란 뜻도 있다. 수잔 손택(Susan Sontag)이 은유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카메라는 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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